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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흔아홉, 몽블랑 둘레길을 걷다. 데이비드 르 베이책을읽다 2018. 10. 9. 21:49
산은 내게 특별한 존재다. 산은 우리의 관점을 변화시키고, 웅장한 외양은 내적인 무언가를, 고행중인 수도사가 걸치고 다니던 마미단 옷처럼 오늘날 우리가 지고 다니는 자잘한 걱정과 근심, 불안을 어떻게든 떨쳐낼, 세상 속 오직 나만의 장소에 대한 기대를 거울처럼 반영한다.(18쪽)
산들은 자연들의 맹렬한 풍파가 자신들을 빚어낸 방식 그대로 우리를 빚어낸다. 고로 산을 경험하는 것은 곧 자신의 일부를 경험하는 것이다. 그것은 우연한 만남이며 우연한 만남이 으레 그렇듯 경험자에게 작은(혹은 그리 작지 않을)변화를 가져온다. 당연하게도 장거리 도보여행은 명상의 한 형태이며, 내딪는 걸음걸음은 몸짓과 움직임의 매혹적인 만트라다.(20쪽)
신체의 균형감각과 씨름하다보면 내면의 균형감각도 변화하게 마련이다. 또한 산행은 움직임과 추진력의 활동이다. 어린아이가 생각이나 개념을 전달하기 위해 폴짝이고 꿈틀대고 바닥을 서성이는 것과 같이, 생각과 행동, 정신과 신체가 놀랍도록 조화로운 춤 속에 한데 뒤엉키는 것이다. 소로가 일기에 쓴 것처럼 단한번의 발걸음으로는 지상에 길을 닦을 수 없듯이 단 한 번의 생각만으로는 마음에 길을 닦을 수 없다. 물리적으로 깊은 길을 닦기 위해 우리는 스스로의 삶을 지배하고 싶다는 바람 같은 것들을 생각하고, 또 생각해야한다.(27쪽)
걷기는 사색적 활동이며, 걷는 사람은 속도를 늦추고 현재에 발붙이게 된다. 환경을 그때그때 파악해 자신을 둘러싼 모든 걸 꼼꼼하고 세세하게 인식하고, 몸이라는 물질적 신체와 정확히 보조를 맞추는 것이다.(39쪽)
소설가 올더스 헉슬리는 자신의 아버지가 산속을 걷는 것을 교회를 다니는 것과 동일하게 여겼다고 말했다. 독실한 종교인이기는커녕 오히려 그 반대인 나도, 이런 곳에서는 영적인 깊이 같은 걸 느낀다. 외적인 무엇이 아닌, 내면의 고요, 차분한 사색의 공간과 연결된 느낌이랄까, 신기하게도, 이처럼 신비로운 환상의 세계에 빠져있는 동안에는 모든 고민이 사소하게 느껴진다.(99쪽)
자연 속에서 건강과 기운을 회복시키고 창의력을 높이는 걷기의 힘은 문화 속에서 잘 받아들여져 깊이 침투해 있으며, 문학과 철학분야에서 특히 그렇다. 이제 과학과 의학은, 걷기와 운동, 자연세계와 연결돼 있다는 느낌이 단순히 건강에 좋은 수준을 넘어 육체와 정신건강을 다스리는 문제에서 약물의 대안으로 충분한 근거를 갖추었다는 사실을 뒷받침한다.(239쪽)
사람들은 몰입상태에 있을 때 가장 큰 행복과 만족을 느낀다. 무아지경에 이른 것처럼 특정 활동에 완벽하고 즐겁게 빠져든 상태, 완벽한 열중의 느낌이 바로 몰입이다.(236쪽)
모르겠다, 무언가를 향해서 걷고 있는지, 무언가로부터 멀어져가고 있는지, 둘 다일수도 있고 둘 다 아닐 수도 있다. 하지만 엄연한 사실은 상상할 수 있는 가장 멋진 장관 속에 걷는 일에 매일 몇 시간씩 할애하면서 인생에 관해 사색하지 않기란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이는 소위 말하는 인간의 본성이다.(25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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