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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늘의 남자. 김형경
    책을읽다 2016. 9. 1. 08:54


      정신분석학에서는 무의식이 표출되는 통로를 꿈, 몸의 통증, 언어 세 가지라 말한다.(...) 일상에서 범하는 말실수를 무의식이 표현되는 대표적인 현상으로 본다. 이를 입술 위에서 미끄러지는 무의식이라한다.(...) 세속의 법칙으로 성공한 남자들을 보면 의식차원에서 능숙한 만큼 무의식 차원에서 미숙하다. 그들이 억눌러온 무의식 영역이 통제력을 잃고 터져 나올 때마다 그것을 확인한다. 무의식이 터져 나오는 대표적인 경우는 술에 취해 자제력을 잃었을 때이다. 평소라면 입 다물고 안으로 삼켰을 말들이 제멋대로 입술위에서 미끄러진다.’ 무의식의 통제력을 잃는 또 다른 경우는 도취의 순간이다. 여자든 권력이든 그것에 도취되는 순간 황홀함이 이성을 마비시킨다.(16~17)


      사실 거짓말은 무의식적으로 행해지는 자기보호 전략이다. 성장기 내내 우리는 진실을 말했을 때 화내거나 믿어주지 않는 어른들을 상대해왔다. 사실대로 말하면 용서해주겠다는 말을 믿었다가 더 큰 곤욕을 치른 경험도 있다. 거짓말하는 이들에게는 그를 믿어주지 않는 양육자가 먼저 있다. 무엇보다 남자는 세상을 기본적으로 경쟁의 장으로 이해하기 때문에 자기 정보를 노출할수록 경쟁에서 취약한 자리에 서게 된다고 믿는다. 요즈음 같은 정보화사회에서는 잘못 내보인 개인정보 하나가 어떤 곤란을 초래할지 상상할 수 없다. 솔직함이란 곧 사회적 미숙함과 같은 셈이다.(44쪽)

     

      경쟁, 공격, 편협 등은 내면이 약한 자들의 특성이다. 외부에서 작은 자극만 가해져도 내면에서 큰 두려움과 혼란을 경험하면서 과잉 반응하는 것이다.(...) 양보, 겸손, 관용은 마음이 강한 자들의 미덕이다. 경쟁에서 지거나 모욕당해도 마음중심이 흔들리지 않는 이들의 특성이다.(51)

     

      음주나 흡연은 마음 깊은 곳의 불안, 수치심, 공허감등과 관련되어 있다. 술을 마시고 담배를 피우는 순간 우리는 내면의 불안이 가라앉고 공허감이 잠시 충족된 듯 느낀다. 도박, 섹스, 속도감등 우리가 의존하는 중독 대상들은 모두 동일한 심리적 용도로 사용된다.(52)

     

      정신분석학에서 부끄러움은 초자아가 울리는 경고음이라고 해석한다. 초자아는 부모의 목소리가 내면화되어 만들어지는 자아감독기관인데, 우리의 충동이나 욕구에 대해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기능을 한다. 부끄러움을 느낀다는 것은 양심이 잘 작동하고 있다는 것이다.(54)


       늘 그렇게 생각해왔다. 가장 나쁜 사람이 가장 아픈 사람이라고. 폭력적이고 괴팍하다고 손가락질 받는 사람들 내면을 들여다보면 그가 성장기에 중요한 양육자로부터 그와 같은 것을 받았음을 확인하게 된다. 성장기 아이에게 단 한명의 어른이라도 따뜻한 눈길을 주고, 이야기에 귀 기울여주고, 잠재력을 믿고 격려해주는 사람이 있었다면 아픈 사람이 나쁜 사람으로 변화하지 않았을 것이다. 우리 사회가 마음의 문제를 인식하고 보살피기 시작한 지 십년이 조금 넘었다. 이즈음에는 남자들도 내면에 마음이라는 것이 있으며 그것이 가장 힘이 세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듯하다. 아픈 남자가 나쁜 남자가 되지 않도록 개인의 인식과 사회 시스템이 함께 변화해야 할 것이다.(59쪽)


        불가에서는 팔만사천법문을 한자로 줄이면 마음심()’‘이라고 한다. 불교 수행자들이 수행과정에서 일차적으로 도달하고자 하는 지점은 마음이 고요한 상태다. 외부에서 오는 어떤 자극에도 마음이 흔들리지 않고, 내면의 어떤 욕구에도 몸이 들뜨지 않는 곳, 먼저 선정에 도달해야 지혜도 생기도 복덕도 자란다. 중생의 근기가 다양하기 때문에 수행방법도 여러 가지가 마련되어있다. 참선, 간경, 사경, 백팔배, 염불 등등, 모두 고요한 마음으로 가는 길이다.

       세속에서는 우리도 늘 불편한 마음을 편안케 하기 위하여 노력한다. 마음이 항상 안팍으로부터 추동당하면서 날뛰기 때문에 저마다 몸에 익힌 해결법을 가지고 있다. 여자들은 수다, 잔소리, 쇼핑, 문화센타, 취미생활 등으로 마음을 조절한다. 남자들은 운동, 술자리, 노래방, 등산, 낚시 등 신체활동으로 내면의 불편한 감정을 해소시킨다. 그리고 남자에게는 특별한 방법이 하나 더 있다. 섹스.(120)

     

      개인적으로 한 인간의 삶의 성패는 리비도 영역의 욕동을 어떻게 관리하느냐에 달려있다고 생각해왔다. 욕동이란 분노 같은 파괴적 감정과, 성욕 같은 원초적 본능이 뒤섞인 에너지다. 보통의 성숙한 사람은 승화적 방법으로 욕동을 처리한다. 신체운동이나 건강한 취미생활, 창조적 예술 활동 같은 것, 그보다 덜 건강한 이들은 욕동 에너지에 끌려 다니며 자기 파괴적 행위 쪽으로 이동한다. 술이나 마약 등 중독물질에 탐닉하거나, 거듭되는 외도로 생을 낭비한다. 그 중 최악은 욕동에너지를 통제하지 못한 채 친밀한 상대에게 쏟아내는 이들이다. 그들은 자기에게 가장 소중한 이들을 파괴한다. 아내나 자녀에게 폭력을 휘두르거나 이별을 말하는 연인에게 극단적 위해를 가한다. (130)

     

      “진실로 성숙한 남자는 자신의 성욕을 자기 마음대로다룰 줄 아는 사람이다. 그는 욕망이라는 종마를 우리에 가둬놓는 사람이다. 종마를 우리에 가둘 수 있을 때에야  비로소 그 욕망을 원하는 방향으로 몰고 갈 수 있다. -뉴질랜드 심리학자. 스티브 비덜프-(133)


       남자들은 여자의 간접 어법이나 완곡한 ‘돌려 말하기’를 잘 알아듣지 못한다. 핵심만 정확하게 건네는 남자의 말하기 방식과 머뭇거리며 돌아가는 여자의 언어가 다르기 때문이다. 심지어 여자의 언어를 오해한다. 저녁식사를 못하겠다는 말의 내용보다 그녀가 건네는 상냥한 말투를 먼저 인지한다. 또다른 이유도 있다. 남자들이 대체로 나르시시스트이기 때문이다. 자기가 밥을 사주겠다고 하는데 감히 거절할 여자는 없다고 믿는다. 태어나는 순간부터 소중한 존재로 대접받고, 엄마의 왕자로 자라나고, 남성 중심인 사회의 주인공으로 살면서 나르시시스트가 되지 않기는 오히려 어려울 것이다.(148쪽)


       중년이 되면 꿈과 소망도 포기해야 한다. 우리의 꿈이란 대체로 성장기의 결핍이거나 부모의 꿈을 내면화한 것들이다. 중년이 되면 이미 이룬 꿈도, 아직 못 이룬 소망도 포기해야 한다. 꿈을 이뤘는데 이 허탈감은 무엇이냐고 실망하거나, 뒤늦게라도 꿈을 찾겠다면서 궤도를 벗어나는 이들을 목격한다. 중년이 되면 이타적 삶의 비전을 확립하고, 자녀가 자발적인 꿈을 꾸도록 격려하고 자녀의 꿈을 지지하는 역할을 맡는다.(197)

     

      자기만의 공간이 없다고 느끼는 남자들은 틈내어 산이나 낚시터를 찾는다. 숲길을 오래 걷거나 물가에 조용히 머무르며 깊은 숨을 내쉰다. 몸과 마음이 이완되고 평화가 찾아온다. 비로소 내면에도 의식의 공간이 생겨나고 테메노스(temenos), 즉 연금술사의 그릇이 만들어진다. 그릇 속에 위험하고 불편한 감정을 쓸어 담은 후 그것이 숙성 변화되어 유익한 성분이 되기를 기다린다. 유전자속에 기호화되어 있는 야성의 감각도 깨어난다. 백마를 달리며 새벽을 열던 기억, 나무 그림자로 방향을 잡던 원시의 사냥터가 되살아난다. 야생의 자연공간에서 육체가 단련되고 정신이 제련된다. 그런 시간을 가진 후에는 내가 좋은가, 산이 좋은가하는 아내의 질문도 참을만해진다. 물론 아내가 산행에 동행하겠다고 나서면 깜짝 놀라겠지만.(203)


      물론 그것이 노인 개인의 문제만은 아닐 것이다. 한국 사회의 성장 견인차 역할을 해온 그들이 노년에 이르러 느끼는 허망함을 왜 모르겠는가. 경제적으로 풍요로워진 사회가 노인에게 떠안기는 상대적 박탈감도 작용할 것이다. 전세계적으로 개인들이 더디게 나이 드는 현상도 이전과 다른 노인의 탄생에 기여했을 것이다. 그 모든 요인들을 염두에 두어도 끝내 기이한 대목은 우리에게 나이 듦에 대한 담론이 없다는 점이다. 노년에 대한 인식, 노년의 삶에 대한 모색, 노년에도 가능한 삶의 소망 등에 대해 말하지 않는다는 점이다.(212쪽)


      이 글들을 쓰기 시작할 때의 의도는 한없이 벌어져가는 남녀 사이 간극을 메울 수 있었으면 하는 거였다. 현실에서 만나는 여성들은 남자의 실체에 대해 놀라울 정도로 무지했다. 그들은 남자 인간을 보는 게 아니라 내면의 남자 환상을 원하고 있었다.
    남자도 마찬가지였다. 여성들이 자존감으로 무장한 채 주체적으로 변해가는 동안 남자들은 자기 내면을 알지도 표현하지도 못한 채 여자들을 못마땅해하는 상태로 머물렀다. 그런 이들이 부부가 되어 자녀에게 심각한 심리적 문제를 물려주었다. 내가 안타까웠던 이들은 생을 시작하기도 전에 고통부터 떠안는 청소년과 청년들이었다. 그들을 도우려면 우선 부모 세대가 변해야 한다고 믿었다.(21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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