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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시베리아의 위대한 영혼. 박수용
    책을읽다 2016. 7. 30. 12:29

      우연히 숲에서 시베리아 호랑이를 마주치면 그들은 대부분 먼저 공격하지 않습니다. 인간이 선제공격을 하지 않는한 일정한 거리를 두고 스스로 자제합니다. 종전협정을 맺자고 평화의 손길을 내미는 것입니다. 하지만 쇠붙이 냄새나는 총을 든 사냥꾼을 만나면 달라집니다. 잔혹한 살육전이 벌어지기도 합니다. 시베리아 호랑이는 인간의 간섭으로부터 떨어져 자유롭게 살아가려고 하지만, 인간의 도전이 늘 그들을 응전하게 만듭니다(13)

     

      자작나무는 불에 넣으면 자작자작 잘 탄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우리민족과 소나무를 떼어놓고 생각할 수 없듯이 우수리 원주민은 자작나무, 그리고 버드나무와 뗄 수 없는 인연을 맺고 있다. 우리민족은 아기가 태어나면 금줄에 솔가지를 매달았고 소나무 속껍질을 벗겨다가 솔떡을 해먹으며 보릿고개를 넘겼다. 송홧가루는 다식을 만들었고, 솔잎으로는 술을 빚었으며, 송진은 약으로 썼다. 솔갈비(마른솔잎)는 불쏘시개로, 마른가지와 삭정이는 땔감으로, 둥치는 오래 지나도 휘거나 벌레가 생기지 않아 집을 지을 때 기둥과 서까래로 사용했다. 그리고 종내는 소나무 관속에 누워 솔밭에 묻혔고 무덤 속에서 은은한 솔바람을 즐겼다.(48)

     

      암호랑이 한 마리가 돌아다니는 영역은 대개 3개도 4개 군에 걸쳐있는 지리산국립공원(472평방킬로미터)만하다.(...) 수호랑이는 암호랑이의 네 배정도 된다.(52)

     

      몸집이 클수록 부피에 대한 표면적의 비율이 작아지므로 피부를 통해 빠져나가는 열손실을 줄이는데 유리하다. 그래서 항온동물은 같은 종일 경우 추운지방에 살수록 몸의 크기에 더 큰 경향을 보인다. 이것을 베르그만의 법칙 이라한다.(109)

           

      모든 자취는 시간이 흐르면서 사라진다. 바람은 자취를 쓸어버리고, 비는 자취를 씻어버리며 눈은 자취를 덮어버린다. 숲속의 청소부들은 온갖 생물의 사체를 해체하고 세월은 계절의 흔적조차 소리 없이 지워버린다. 자연은 생명들의 자취를 녹여 스스로 있던 그대로의 모습으로 돌아간다.(112)

     

      숲속생활을 하다보면 갖가지 자연의 느낌이 젖어든다. 정제된 새벽공기, 늪같은 아침안개, 적막한 정오햇살, 부드러운 저녁바람, 얼어붙은 동토의 푸른 기온, 화려한 설국의 하얀 눈꽃...(125)

     

      자연에서는 필요 없는 파문을 일으키는 것을 삼가야한다. 숲에서 인간이 가장 자연스러울 때는 인간답게 행동하지 않고 동물답게 행동할 때다. 인간이라는 한 종족의 규칙이 아니라 모든 종족에게 해당하는 자연의 규칙으로 다른 종족을 바라보는 것, 그러면서 자연에 길들여지는 과정, 이것이 이동관찰의 묘미다. (132~133)

     

      에베레스트 등정이 100미터 달리기라면, 자연 속으로 스며들어 오랜 기간 잠복하는 것은 마라톤이다. 자연의 마라토너가 되려면 자연에 순응해야 한다. 자연에 순응하지 못하고 거스르면 독방에 갇힌 죄수가 부러워진다. 영하 30도의 기온이 한 평짜리 지하 감방에서 씻지도 소리 지르지도 불을 켜지도 못하고 6개월을 갇혀 지내야한다. 독방보다 훨씬 고통스럽다. 강제로 시킬 수 있는 일은 아니다. 스스로 원하는 것, 자연에 순응하기 위한 첫걸음이다.(200~201)

     

      낮에는 바람소리를 구분하며 시간을 보낸다. 실바람, 남실바람, 산들바람, 건들바람, 들바람, 된바람, 센바람, 큰바람, 큰센바람, 노대바람, 황소바람, 바늘바람, 샛바람, 댓바람, 산바람, 눈바람, 바닷바람, 너울바람... 이 자연의 피리소리는 어떤 때는 격류 같고, 어떤 때는 빗발치는 화살 같으며, 어떤 때는 아기의 숨소리 같고, 또 어떤 때는 바다처럼 심원하기까지 하다.(204~205)

     

      작은 주전자에 물을 끓이고 꽁꽁 언 주먹밥 하나를 넣어 녹였다. 반찬은 소금과 김, 말린 과일과 육포, 냄새나는 반찬은 반입금지다. 호랑이의 예민한 후각을 당해낼 수 없다. 세상에서는 이런 맛 저런 맛 기호에 따라 가려 먹지만, 여기서는 먹을 것이 있다는 것 자체가 중요하다. 읽을거리가 있다는 것, 그 자체가 중요하듯이 말이다.(207)

     

      세상에 매몰되어 살다보면 다시 무엇이 중요하고 무엇이 사소한지 잊어버린다. 세상과 격리되어 봐야 문득 정신을 차리고 정말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다시금 깨닫게 된다. 날씨가 추워진 뒤에야 소나무와 잣나무의 푸름을 안다.(207)

     

      한 마리가 비트 지붕 위로 올라왔다. 연이어 또 한 마리가 올라온다. 우지직, 뿌지직! 지붕 송판이 부러지는 소리가 났다. 호랑이들이 지붕 위에 덮어 놓은 흙을 파헤치기 시작했다. 온몸에 식은땀이 흐르고, 의지와는 관계없이 살이 떨린다. 지붕도 곧 무너질 것처럼 울렁거린다. 네 마리 맹수가 서로의 공격을 가속화시키며 구덩이 속의 한 무력한 존재를 마비시키고 있다. (254)

     

      호랑이를 기다리는 일은 자신을 기다리는 일이다. 오지 않는 호랑이를 매일 기다린다. 영하 30도 오지의 땅을 파고 들어가 10분마다 카메라를 보고 켤 때마다 기대를 부풀린다. 하루가 지나가고 한 달이 지나간다. 그래도 안 오면 설마 올까?’ 그렇게 몇 달을 안 오면 오늘도 안 오겠지처음에 집중하다가 서서히 흐려지는, 세월의 함정에 빠져든다. 그러다 문득 눈 덮인 수풀 사이로 호랑이가 서늘한 기운을 풍기며 스윽 나타나면, 가슴속 깊은 곳에서 뜨뜻한 느낌이 뭉클 솟아오른다. 이 녀석, 아무 사고 없이 돌아왔구나, 안도감이 호랑이를 기다리고 자신을 기다린 세월에 스며들고 눈시울은 붉어진다. 야릇한 감상도 잠시, 안도감을 밀어내고 살아 펄떡이는 긴장감이 심장박동을 타고 서서히 흘러들어와 그 자리를 대신한다. 온몸의 모세혈관이 터질 듯 야생호랑이를 영상 기록하는 그 짧은 순간이 영원처럼 느껴진다. (273)

     

      호랑이가 나를 바라보며 가만히 서 있었다.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아니, 하면 안 될 것 같았다. 목에건 카메라를 들 수도 없었다. 손만 까딱해도 덤벼들 것 같았다.(322)

     

      우리사회에는 무엇이 진실로 바람직한가 보다는 다른 사람들이 선망하는 것이 무엇인가를 더 염두에 두는 풍조가 있습니다.(430)

     

      사람들은 왜 산을 오를까? 왜 바닷 속에 들어가고 땅속으로 들어갈까? 봄날 애벌레조차 나비를 꿈꾸며 꿈틀거립니다. 꿈이 없는 삶은 허무합니다. 아니 삶이 허무하기 때문에 꿈을 꾸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꿈이라는 나무는 마약과 같습니다. 한 그루를 정성껏 심다보면 열 그루를 심게 됩니다. 나무 우거진 오솔길을 걷고 싶을 때 걸어갑시다. 성공과 실패는 나중의 일입니다. 꿈은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키우는 것입니다. 하고 싶은 일을 하지 않는다면 대체 무엇을 하겠습니까?(435)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산다는 것, 그것만큼  보람있는 삶이 있을까? 저자는 그런 사람이어서 참 부럽다. 목숨을 내어놓는 두려움을 담보하면서까지 지구상에서 멸종의 위기에 처한 시베리아의 위대한 영혼이라 일컬어지는 백두산 호랑이를 찾아 20여 년간 연해주와 만주를 헤매며 추적해온 저자의 의지, 호랑이의 탄생에서 죽음까지 몸짓, 눈빛, 발자국, 숨결 그리고 영혼까지 포착하여 느끼며 기록한 대 탐사이자 서사이다.

     

      우리나라 3개도 4개시군에 걸쳐있는 지리산 국립공원(472만 평방킬로미터) 만한 넓이의 호랑이 행동반경 발자취를 찾아 겨우 눕고 일어설 정도의 땅속 비트를 만들고 그 속에서 생리적 배설물까지 해결해야하는, 이 보다 더 열악한 감옥도 세상엔 없으리라. 시베리아삭풍이 몰아치는 긴겨울내내 6개월동안 꽁꽁 언 주먹밥을 녹혀먹으며 사람으로서 견디기 힘든 고통을 감내하고 호랑이와 숨결까지 교환하며, 일촉즉발 생명도 잃을 수 있는 급박한 순간에도 침착하게 대응하는 저자의 집중력, 이게 가능할까 싶을 만큼 끈질긴 열정과 집념 도전정신이 단연 독보적이어서 경이롭다 못해 숭고하다. 읽는 내내 마치 현장에서 저자와 함께 다니는 듯 가슴이 두근거려서 스릴이 넘치는 긴 여정은 조금도 지루하지 않다. 다큐멘타리의 진수를 맛 보았다. 이것은 인류를 위한 善이고 숭고한 道이며 冥想이다. 오랜시간 목숨을 건 몸으로 쓴 기록이어서 한번 책을 손에 쥐면 놓아지지 않는다.

     

      우리에게 이 아름다운 서사를 읽을 수 있게 기록해 준 저자가 정말 고맙다. 지금 세상을 우울하게 하고 있는 힘을 가진 권력자들의 비굴하고 추레한 모습이 언 듯 스친다. ‘홍만표, 진경준, 나향욱, 우병우, 이건희...’ 민중들을 저들의 부를 축적하는데 필요한 자원으로만 여길뿐인, 그래서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할 수 있다고 여기는 천박한 사람들, 천민자본주의의 꼭대기에 앉아있는 이들, 그들의 삶은 부럽지 않다. 그들은 호피엔 관심이 있을지 모르지만 백두산 호랑이엔 관심이 없다. 최근 법문집 어떻게 살 것인가를 펴낸 수덕사 주지 설정스님은 " 배운 사람이 양심을 저버리면 흉측한 짓을 하기 마련이다. 자신의 가정뿐 아니라 사회와 국가에 큰 피해를 끼치게 마련이다."라고 하였다. 어쩌면 이 책은 사람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깊게 고민하게 한다.


      지구라는 시공간에 같이 살면서 어떻게 사는냐에 따라 삶이 얼마나 추할 수 있으며 아름다울 수 있는지를 이 책은 은유로 말한다. 여성학자 정희진은 "원하는 것이 없는 사람이 권력자다. 자기 충족적 삶은 최고로 힘을 가진 상태다. 인간은 권력지향적이기 때문에 권력감이 없으면 외로운데, 자기 몰두형 인간은 권력에 무심하다. 사실, 이 행복은 생각보다 어렵지 않다.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하면된다." 고 말한다. 저자는 배운사람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보여주는, 돈하고는 상관 없이 꿈을 키우며 좋아하고 그래서 하고싶은 일에 몰두함은 궁극적으로 생명을 사랑하고 이 사회공동체를 건강하게 지키기 위한 일임을 보여준다.


      경남 거창이 고향인 저자는 어릴적 농부이자 소장수인 아버지를 따라 7년동안 소를 몰고 이장터 저장터로 소백산맥을 넘나든 이력이 자연과 한몸이 되게 했다고 고백하며    "꿈은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키우는 것입니다. 하고 싶은 일을 하지 않는다면 대체 무엇을 하겠습니까?" 라고 되묻는 저자 박수용 선생이 참 멋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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