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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빠리의 택시 운전사. 홍세화책을읽다 2016. 7. 27. 14:32
옛날에 서당선생이 삼 형제를 가르쳤겠다. 어느 날 서당선생이 삼 형제에게 차례대로 장래희망을 말해보라고 했겠다. 맏형이 말하기를 "저는 커서 정승이 되고 싶습니다"고 하니 선생이 아주 흡족한 표정으로 "그럼 그렇지"하고 칭찬했겠다. 둘째 형이 말 하기를 '저는 커서 장군이 되고 싶습니다'고 했겠다. 이 말에 서당선생은 역시 흡족한 표정을 짓고 "그럼 그렇지, 사내대장부는 포부가 커야지" 했겠다. 막내에게 물으니 잠깐 생각하더니 "저는 장래희망은 그만두고 개똥 세 개가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했겠다.
표정이 언짢아진 서당선생이 "그건 왜?" 하고 당연히 물을 수밖에. 막내가 말하기를 "저보다도 글 읽기를 싫어하는 맏형이 정승이 되겠다고 큰소리를 치니 개똥 한 개를 먹이고 싶고, 또 저보다도 겁쟁이인 둘째 형이 장군이 되겠다고 큰소리치니 또 개똥 한 개를 먹이고 싶고...." 여기까지 말한 막내가 우물쭈물하니 서당선생이 일그러진 얼굴로 버럭 소리를 질렀겠다. "그럼 마지막 한 개는?" 하고.
여기까지 말씀하신 할아버님께선 이렇게 물으셨다. "세화야, 막내가 뭐라고 말했겠니?" 하고. 나는 어린 나이에 거침없이 대답했다. "그거야 서당선생이 먹으라고 했겠지요, 뭐." "왜 그러냐?" "그거야 맏형과 둘째 형의 그 엉터리 같은 말을 듣고 좋아했으니까 그렇지요?" "그래, 네 말이 옳다. 얘기는 거기서 끝나지. 그런데 만약 네가 그 막내였다면 그 말을 서당선생에게 할 수 있었겠느냐?" 어렸던 나는 그때 말할 수 있다고 큰소리를 쳤다. 그러자 할아버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세화야, 네가 앞으로 그 말을 못 하게 되면 세 번째의 개똥은 네 차지라는 것을 잊지마라."
나는 커가면서 세 번째의 개똥을 내가 먹어야 한다는 것을 자주 인정해야 했다. 내가 실존의 의미를, 그리고 리스먼의 자기지향을 생각할 때도 할아버님의 이 말씀이 항상 함께 있었다.
인간관계란 무릇 상대적이다. 상대방이 사람대접을 해줄때, 상대를 사람 대접해 줄수 있다. 아무리 품성이 좋은사람이라 할지라도 사람취급을 못받거나 무시당한다고 느낄때에는 화를 내게되고 적대감까지 품게된다. 우리들은 '일보다 사람이 더 사람을 괴롭게하고 피로하게 하는 현대' 에 살고있다. 나와 다른 남을 용인하는 것.. 그것이 똘레랑스다.
우리사회에, 관용을 말하는 똘레랑스(tolerance)를 익숙하게 한, 1979년 남민전 사건에 연루되어 빠리에서 망명의 질곡에서 살기위해 택시운전을 하였던 사회운동가이며 진보언론인 홍세화의 책 "나는 빠리의 택시운전사"에 실린 저자의 이야기다. 짐승이 아닌 사람이기에 치열한 삶을 살아온 그를 읽으면서 나는 그 시절에 무엇을 했나 부끄러웠다. 책은 거울이다. 훌륭한 할아버지를 둔 작가가 부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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