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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시선. 정운영 선집. 정운영
    책을읽다 2016. 7. 18. 11:02

      당신은 진보라는 이름으로 평생을 살다 갔습니다. 그런데 분단된 조국에서 그 이름은 무겁기 이를 데 없는 형틀이었습니다. 당신은 그 이름을 지키다가 두 번이나 신문사와 대학에서 쫓겨나는 가시밭의 삶을 살아야 했습니다. 거듭 생각하건데 진보라는 것이 뭐 유별난 것입니까. 지식인으로서 사실을 사실이라고 말함으로서 진실을 밝혀내고, 그 진실을 옹호해 나아가자는 것 아닙니까.(30)

     

      독일과 제휴한 비시 정부의 수상 라발은 총살당하고, 주석 폐탱은 사형에서 종신형으로 감형되어 치욕의 목숨만을 부지했다. 그러나 만주국의 신경군관학교 시절에는 오카모토 이노부로, 일본 육군사관학교에서는 다카키 마사오라는 이름으로 천황폐하에게 충성을 맹세한 일본군 장교 박정희는 뒷날 쿠데타를 통해 대통령에 오른다. 프랑스는 독일군과 어울린 여자들조차 머리를 박박깍아 조롱거리로 만들며 후세에 본을 보였는데, 우리는 과연 무엇을 남길 것인가? 친일파 처단은커녕 친일파에 처단당하면서 나라의 장래가 비틀어지기 시작했다.(49)

     

      무엇인가를 나눈다는 행위는 그에 앞서 각기 이해가 대립되는집단을 상정하게 만듭니다. 만약 서로 많이 가지려고 경쟁하지 않고, 서로 적게 가지려고 양보한다면 경제학은 더 이상 필요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 이해 대립의 집단을 경제학에서 계급이라고 부릅니다. 예컨대 고대사회에서는 노예가 생산한 괴실을 귀족이 채찍을 휘둘러 빼앗았으며, 중세 사회에서는 농노에게 빌려준 토지의 대가라는 명분으로 영주가 지대를 걷었으며, 현대 사회에서 노동자는 생산물의 일부를 임금으로 받고 나머지는 자본가가 이윤을 차지합니다. 계급이란 이렇게 밥의 생산과 분배에 참여하는 사람과 사람-즉 노예와 귀족, 농노와 영주, 노동자와 자본가-의 관계를 가리키는데, 그것은 즉시 노동 대상과 노동 도구를 차지한 집단과 노동력만을 지닌 집단의 갈등 위에 근거하고 있습니다.(79)

     

      일이 없으면 밥이 없고, 밥이 없으면 책도 없다. 책이 밥보다 중하다는 가르침은 봉건 시대의 우직한 윤리이고, 약삭빠른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배가 불러야 책을 읽는다.(163)

     

      나는 교회가 부유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을 여전히 버리지 못하고 있다. 돈을 가지고 해야 하는 일은 돈이 많은 다른 데에 맡겨도 좋기 때문이다. 따라서 돈으로 안 되는 일, 돈으로 못하는 일이 교회 고유의 영역이 되어야 할 것이다. 라틴아메리카의 해방신학은 돈이 잘못한 일을 바로잡기 위한 투쟁의 소산이다. 물론 돈으로 해야 할 일 가운데 사회가 고개를 돌리기 때문에 교회가 대신 맡으려는 몫이 없지는 않다. 그러나 그런 일조차도 가난에서 출발하지 않으면 안 된다. 돈은 흔히 돈의 논리로 사람을 타락시키고 사물을 지배하려 들기 때문이다.(173)


     

      법정 스님의 무소유를 읽은 후 사람답게 살아야겠다고 다짐하였고, 리영희 선생의 전환시대의 논리를 읽고 세상을 보는 나의 무지함이 부끄러웠다. 함석헌 선생의 뜻으로 본 한국역사를 읽고 내가 어디에 서 있는지도 모르고 살았음이 창피하였다, 신영복 선생의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을 읽고는 가난한 삶의 열등감에서 벗어나기도 하였다. 김수행 선생의 자본론 공부를 읽고는 노동자 고통의 근원과 신자유주의 경제체제의 어두운 그림자를 들여다 볼 수 있었다. 그렇게 책을 통하여 정의가 무엇인지 어렴풋 깨닫게 되고, 어떻게 살아야 할까 고민하면서 쪽 팔리게 살지 말자고 다짐하고 다짐 한다. 그 분들이 세상을 떠났을 때 그렇게 빨리 가시면 안 되는데 하는 아쉬움과 슬픔이 가슴 깊은 곳에서 떠나지 않는다.

     

      경제학자 정운영 선생의 저서를 읽은 적은 없다. 숫자에 약하여서인지 경제학 쪽 책은 잘 읽게 되지 않았지만 신문칼럼을 통하여 진보 지식인의 냉철함과 따뜻함을 보았고, mbc 방송 100분 토론을 진행할 때의 (정권의 나팔수가 되어있는 요즘 mbc 같으면 진행자가 되지 못했을것이다) 해맑은  미소와 인정이 넘치는 목소리 그리고 치우치지 않으면서 명쾌하게 진행하는 모습을 보고 애청하였는데, 어느 날 운명 하셨다는 소식에, 왜 이렇게 훌륭한 분들을 하느님은 빨리 데려가실까 하고 원망하였다. 김이경 작가의 책에서 선생의 따뜻한 인정을 그리고 있어서 퍼뜩 만나고 싶어, 생전 언론에 실렸던 칼럼을 묶은 이 책을 읽었다. 조정래 선생과의 깊은 우정의 추도사로 시작하는 책에서, 선생이 가신지 10년이 넘었지만 여러갈래 잔주름 패인 깊은 시선과 따뜻한 체취는 아직 살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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