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법의 풍경. 김두식

  ‘대화’는 “나만이 절대적인 진리를 갖고 있는 것은 아니다”라는 자각에서 출발합니다. 우리들 중 누구도 정답을 지니고 있지 않다는 것을 솔직히 인정하는 데서부터 대화가 시작하는 것입니다. 내가 잠정적으로 정답이라고, 정의하고 생각하는 것은 존재하지만, 그것은 상대방과 대화를 하면서 언제든지 수정 가능한 것이어야 합니다. 상대방과 나누는 대화에 의해 내가 가진 정보의 양이 늘어나다 보면 분명히 어느 지점에선가 내 생각을 바꿔야 하는 순간이 찾아옵니다. ‘대화’란 다른 사람의 생각을 받아들임으로써 내 생각을 발전시켜 나가는 재미있는 작업입니다. (101쪽)

 

  적법 절차를 강조하는 저의 입장은, 첫째, 자기 생각이 틀릴 수 있다는 인간의 본질적 한계를 인정하고, 둘째, 다른 사람의 이야기에도 귀를 기울임으로써, 셋째, 적법 절차 안에서 대화를 통해 문제를 해결해 나가야 한다는 원론적인 수준으로 정리할 수 있습니다.(109쪽)

 

  아우슈비츠 생존자로<이것이 인간인가>등 많은 작품을 남겼으나, 평생 아우슈비츠의 악몽에서 벗어나지 못한채 끝내 자살로 생을 마감한 프리모 레비(1919~1987)의 말처럼 “괴물들은 존재 하지만, 그들의 숫자는 너무 적어서 큰 위협이 되지 못하며, 정말로 위험한 존재는 아무런 의문도 제기하지 않은 채 정부의 말을 그대로 믿고 행동하는 관료들”입니다. (135쪽)

 

  국가의 괴물화를 막아야 할 법률가들이 오히려 괴물이 된 국가권력의 손발이 되어 인간의 존엄성을 유린한 사례는 어디서나 찾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국가가 제정신을 되찾은 후에도, 괴물의 수족이 되었던 법률가들이 우리나라처럼 떳떳하게 잘 살고 있는 사례를 찾기란 쉽지 않습니다. 과거에 대한 반성 없이 더 나은 미래는 만들 수 없습니다. 역사 앞의 정직한 반성과 공개만이 고문 재발을 막을 수 있는 유일한 길입니다. (176쪽)

 

  ‘검찰청에 들어가면, 검사님께서 나가도 좋다고 허락하실 때까지는 함부로 검찰청을 벗어나서는 안 된다‘ 는 생각은 한마디로 오해입니다. 이런 오해 때문에 그동안 우리나라 수사기관은 수사를 거저먹을 수 있었습니다. 수사기관이 일반인의 이런 오해를 적절히 이용해온 셈입니다.

  다시 한 번 분명히 말씀드리지만, 체포, 구속된 피의자를 제외하고는 검찰청에 제 발로 걸어 들어간 사람은 누구라도 아무 때나 제 발로 걸어 나올 권리가 있습니다. 이게 기본이고, 여기에서 벗어나려고 할 때에는 예외적인 강제수사가 되며, 예외적인 강제수사를 하려면 반드시 판사가 발부한 ’영장‘이라고 하는 ’특별한‘ 무기가 ’따로‘ 준비되어야만 합니다. (283쪽)

 

  저자는 친절하다. 옆에서 작은 소리로 조근 조근 얘기해 주는 이웃집 아저씨처럼, 읽다보면 두꺼운 책도 금방 끝장에 다다른다. 고시를 패스하고 군법무관을 거쳐 검사에 임용되었으나 내 갈길은 이게 아니다 하고 세상 사람들이 선망하는 최고의 엘리트라는 검사의 자리를 미련 없이 던져 버리고, 유학중인 아내의 뒤를 따라 외조를 하면서 장애인 관련 법 공부를 하고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는 저자의 글은 경험에서 나오는 고백이나 다름없어서 정말 피부에 와 닿는다.

 

  이 시대에 괴담수준인 ‘1%, 99%, 민중은 개돼지’ ‘신분제가 필요하다’라는 교육부 고귀공직자의 진담이 들끓는 지금, 그의 글을 읽다가 보면 어쩌면 이게 진정한 ‘지식인의 양심’ 이겠구나 하는 생각이 절로 든다. 사전에서 헌법의 정의는, ‘첫째 한나라 최고의 상위법. 국가의 통치체제에 관련된 기본적 원칙과 국민의 기본적 권리, 의무 따위를 규정한 것이다. 둘째, 자유주의 원리에 입각하여 국민의 기본권을 보장하고, 국가의 정치기구 특히 입법조직에 대한 참가의 형식 또는 기준을 규정한 근대국가의 근본법.’ 이라고 적고 있다.

  법원, 검찰청, 변호사의 세계, 한 사회의 최 상층부에 속해있는 소위 법률전문가 집단을 적나라하게 비춰주는, 법무관이 되기위한 군대 훈련과정에서 조차 상명하복이 생명인 지휘체계를 무력화시키고 특권층을 형성하는 그들만의 세계, 요즘 법조비리의 주범으로 온 세상을 뒤끓게 하고있는  홍만표, 최유정 변호사  진경준 검사장의 사건에서 보듯,  아무도 못 말리는, 그래서 아직은 우리나라의 법 세계가 그들만의 리그일 뿐이라는, 그렇기에 공부해서 조그만 피해라도 잇슈화하여 만만한 국민이 되지 말아야 한다는, 고백이나 다름없는 저자의 글은 씁슬하면서도 큰 위로가 된다, 한 나라의 민주주의는 그 나라 민초들의 수준만큼이라 하지 않는가. 맛 있는 음식을 먹었을 때의 기분좋은 뒷 맛처럼 그 여운이 길다.   

  민초들은 법이라고 하면 그저 어렵기만 하고 혹여 권력기관에서 우편물이라도 날아오면 어찌 할 줄을 모르는 것이 보통사람들의 법감정인데, 법 없이도 살 수 있는 대개의 보통사람들도 최소한 국민의 기본권이 무엇인지는 알아야 할 필요가 있다. 책에서 말하고 있듯 법의 목적은 평화이며 그 평화를 얻는 수단은 투쟁이다. 세월호 참사처럼 가만히 있으면 죽는다.  그래서 권력자들에게 억울하게 당하고만 살지 않아야 한다는 이야기를  쉽고 따뜻하게 적고있다.  한글만 알면 누구나 재밌게 읽혀지는 좋은 책이다.

  복음주의 기독교 가정에서 성장하였고 기독교 신앙을 갖고 있는 저자는  '불멸의 신성가족' '교회속의 세상, 세상속의 교회'등의 책에서 동성애자를 비롯 소수의 고통받는 이들의 편에서 기성교회의 아집과 독선에 일침을 가하는, 스스로 1%에 들기를 거부한 저자는 힘들게 살아가는 민초들에게 따뜻한 용기를 심어준다.  저자의 책은 모두가 잘 읽히고 감동을 준다. 적극적으로 읽기를 권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