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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악산(미시령~울산바위갈림길~황철북봉~황철봉~저항령~걸레봉~마등봉~마등령~공룡능선~신선대~무너미고개~희운각~소청대피소)16년9월10일설악산길 2016. 9. 12. 17:12
화채능선을 걸으면서 뒤 따라오시는 산우님께 "제가 왜 주말마다 힘들게 산행을 하는지 아시나요?" 하고 물었지요. "죽지 않을 만큼 몸을 괴롭혀 놓아야 힘이 빠져서 그나마 주중에 잘 난체 하지 않고 다소 착해진 사람이 되어 욕먹지 않고 살 수 있기 때문입니다." 산우님이 막 웃으시데요. 뚱딴지같은 자문자답에 별스런 사람도 다 있구나 하면서도 일변 그렇기도 하겠구나 싶어 웃음보가 터진거겠지요...^^
처음부터 그런 철학이 있었던 건 아니지만 주말마다 이른바 빡쎄게 산행을 한지 삼십년을 넘기면서 크게 다치기도 하고 산짐승을 만나 혼절할 뻔 하기도 했고 바위에서 추락하여 죽을 고비를 넘기기도 하는 등 나름대로 산전수전 다 겪으면서도 거부할 수 없는 뭣이 소중한 내 몸을 쌩 고생 시키나 하고 곰곰 생각해 보았지요. 그러면서 아하! 이건 머리가 아니라 몸으로 하는 공부이겠구나 하는 결론을 얻은거지요.
“동양적 관점에서 보면, 공부를 한다는 것은 몸의 힘을 빼는 것이다. 긴장을 해서는 절대로 고수가 될 수 없다. 내 몸의 경직성이 커질수록 타인은 물론 세상과 소통할 수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배운다는 것은 궁극적으로 천지와 소통한다는 의미이고 릴렉스(relax) 된다는 뜻이다. 또한 동양적 관점에서 깨달음은 유동하는 마음을 갖는 것을 의미한다. 존재가 유동성을 가질 때 더 큰 세상, 더 많은 타자와 소통할 수 있는 것이다.” <생각수업> 이라는 책에서 고전 평론가 고미숙의 글입니다.
제가 산행을 하면서 도출해낸 결론과 같아서 공책에 적어놓았지요. 그렇지요 우리는 어찌하다 보니 그냥 산이 좋아서 걷지만 그것은 몸의 힘을 빼는 공부이지요. 힘이 빠져야 유연해져서 외연이 넓어지는거지요. 세상살이에서 소통을 가로막는 욕망, 고집, 시기, 증오, 미움... 뭐 이런 이기적인 것들이 버려야 할 뻣뻣한 힘이라는 놈이지요. 기운이 다 소진된 상태로 희운각에서 소청으로 오를 땐 정말 힘들었지요. 그것을 넘어서는 게 고수에 오르는 길인데 대부분 그 곳에서 멈추어 버리고 소수의 사람만이 임계점을 넘는 희열을 경험하면서 엔간한 해작질에도 꿈쩍 않는겸양지덕(謙讓之德)에 이르러 세상과 소통하게 되는 게지요.
대피소에서의 하룻밤도 모두들 스스로 불목하니가 되어 먹거리를 만들고 잠자리를 챙겨 처음 오신 분들에게도 살갑게 다가가는 정성이 절로 나오는게 아니라 몸의 힘을 뺀 공부가 몸에 배어서 그런거지요. 저는 정말 흐뭇했습니다. 1무1박3일의 설악산 명품산행은 더 큰세상 더 많은 타자와 소통하기 위한 힘 빼기 공부였습니다. 이만한 공부가 또 어디있겠습니까. 기대했던 것보다 넘치는 속초중앙시장 회파티는 그래서 더욱 흥겹고 즐거웠습니다.
설악산 쌩고생 공부 경험담을 가족들과 즐겁게 소담(笑談)하는 추석명절 되시기를 바랍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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