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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무 말도 아닌 날. 최고운 산문집.
    책을읽다 2016. 7. 1. 14:27

       남녀관계가 이성이 아닌 편안한 무성의 친분으로 흘러가면, 스스럼없이 어울려 노는 것의 명분은 될지 모르겠다. 그러나 모든관계는 성적매력을 전제로 한다는 사실만은 변함이 없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사람들 사이에서 단지 'one of them'이 아니라 특별한 느낌을 발산할 수 있는 재주를 타고 났다면 모르겠지만, 그저 한 덩어리의 무리로 기억될 정도의 존재감으로 여기저기 휩쓸려 다니거나, 이성이 너무 쉽게 허물없이 대하도록 경계를 풀어서는 안 된다.(책 27쪽)


      홍상수의 많은 영화 가운데 이런 대사가 있다. "사람들 대부분의 불행은 사실은 정말로 제대로 된 짝을 못 만나서 일어나는 거야, 그건 돈도 아니고 열등감도 아니고 성공을 못해서도 아니야, 거지같은 부모를 만나서도 아니더라고... 정말 제대로 된 짝만 만나면 인생이 만사형통이야." (책 235쪽)


      인간은 불완전한 존재라고 여기지만, 꼭 그런 이유로 이인 일조가 되어야 한다고 믿지는 않는다. 짝이라는 건 있으면 더없이 좋겠지만 없이 살아도 괜찮다. 지금 현재 짝이 앖다고, 혹은 이별 했다고, 아니면 이혼 했다고, 어쩌면 태어나 지금까지 이렇다 할 인연 하나 없었다고 해서 감히, '그건 실패한 삶'이라 말할수는 없다. 그렇지만 정말이지 제대로 된 짝만 만난다면, 인생은 만사형통이다, 그 반대라면 인생이 지옥인것 처럼.  (책 236쪽)





        기생충 박사 서민 교수의 책 '서민적 글쓰기' 에 언급된 책이어서 보았다. 첫장을 넘기면서 부터 뭐 이런 책이 있어 하고 집어던졌다. 다음날 다시 집어들었다. 비혼 여성인 저자의 속살을 몽땅 드러낸, 그래서 저자의 일기를 몰래 들여다 보는 듯 얼굴이 화끈거렸다. 저자의 생활을 한 폭의 수채화처럼 꾸밈없이 그린 용기를 칭찬해 주고싶다. 픽션이 아니다. 결코 가볍다 할  글이 아니다. 어쩌면 이렇게 자신만만하게 산다는 말인가?


       예순이 넘은 내 세대에겐 낯선 성담론도 읽기가 거북하지 않다. 사람의 욕구가 식욕 성욕 명예욕의 순서라 하듯 섹스만큼 중요한게 있을까싶다. 지금은 벗어났지만 나의 경우 성장기때 부터 기독교 영향을 받아서  결혼을 전제로 하지 않는 섹스는 생각하기가 쉽지 않았는데  비혼여성이 파트너에 대해서 맛있는 음식을 먹고 즐기듯  드러내어 담론하는 데서는 세상 참 많이 변했구나 싶어서 젊은이와 소통하려면, 꼰대가 되지 않으려면 고정된 사고에 벗어나기 위해서 다양한 세대가 쓴 책을 읽어야겠구나 하는 생각를 가지게 하였다.


       일상을 즐기는 삶, 심리학에서는 나의 아픔을 드러낼 때 치유 된다고 하지 않는가. 살아 있는 글이다. 성숙한 사람은 자신의 약점 드러내기를 망서리지 않는다. 그래서 울림이 있다. 누구나 수치를 드러내기를 싫어한다. 그녀의 삶은 수치가 아니다. 당당함이고 자유함이다. 요란하게 치장하고 가면을 쓰는게 우리들 일상의 모습이다. 나도 이런 글을 쓸 수 있을까? 택도 없다. 용기가 없다는 거다. 성숙한 인간이 된다는 건  내게 지난한 일이다. 


      길 고양이에 대한 연민에서부터 세월호의 피지 못한 생명에의 안타까움까지 깊숙히 아파하는  저자는 따뜻하다. 다 읽을 즈음 저자의 다른 책이 없나 검색해 보았다. 첫번째 책이다. 다음책이 나왔으면 좋겠다. 나와는 한세대나 뒤에 서 있는 여성의 (이제 겨우 마흔이 된) 삶과 고뇌를 들여다 볼 수 있어서 참 좋았다. 저자의 다음 책을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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