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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산/(북한산성입구~의상봉~용출봉~용혈봉~나한봉~문수봉~사모바위~응봉능선~진관사)20년4월30일북한산길 2020. 5. 4. 19:02
20여 년 전 돌아가신 내 어머니는 둘째아들인 나와는 스무 살, 장자인 형과는 겨우 열여섯 살 차이밖에 나지 않습니다. 지금 기준으로 생각하면 상상도 되지 않는 모자간 나이차이지요. 해방되던 해인 1945년 봄 일제 강점기 막바지에 정신대에 끌려가지 않으려고 겨우 열네 살에 열 살이나 많은 아버지와 다급하게 결혼하셨기 때문이지요.
그렇게 모자간 나이차이가 나지 않아서 오누이 같다는 얘기도 많이 들었고 초중등학교 시절엔 친구들 어머니보다 훨씬 젊고 예쁘게 보여 이웃 어른들 까지도 누구누구 엄마는 참 곱고 이쁘다 라는 말을 듣곤해서 기분이 좋아 우쭐했던 기억도 있지요.
내가 마흔을 갓 넘기면서 어머니 회갑잔치를 열어 장수하시라고 자식의 소원을 드렸을 때 어머니는 “아이구! 자네도 이제 늙는구나.” 하셔서 “나이만큼 늙어야지요.” 하자 당신이 늙는 건 괜찮지만 내 아들이 늙는 건 싫다 하시는 속마음을 숨기지 않으셨지요. 그 후로 어머니를 뵐 땐 이발과 면도를 깔끔히 하여 단정한 모습으로 더 젊게 보이려고 애 쓰기도 했었지요.
현업에서 은퇴한지 10년이 다 되어가면서 이제는 내 어머니 돌아가신 그때 나이가 내게도 찾아왔네요. 코로나19로 어수선한 세상에서 찾아온 황금 연휴 첫날 두 아들놈이 삼부자 산행을 하자고 요청하여 오랜만에 한나절 북한산의 의상능선과 응봉능선을 이어서 걷고는 근처 이름난 맛 집을 찾아 막걸리 한 잔을 곁들이며 오붓한 시간을 가졌습니다.
삼십대 중반을 넘겨 마흔을 바라보는 두 아들놈의 얼굴을 물끄러미 바라보니 이제 나이든 태가 나는구나 싶어 “내 아들이 늙는 건 싫다” 하시던 어머니 말씀이 떠오르면서 내 자식 늙어가는 모습을 보는 게 그리 유쾌하지는 않구나 싶어 살아 계실 때 잘 해 드리지 못했던 내 어머니가 참 많이많이 보고 싶어졌습니다.
속절없는 세월이 한 이십년 지나가면 내 자식들도 내 나이가 되어 지금의 나처럼 제 자식을 앞에 두고 북한산에서 할아버지와 삼부자 산행을 했었다며 옛날의 추억을 되새기겠지요. 어린이날과 어버이날이 이어져서 부자지정(父子之情)을 도탑게 하는 봄날은 그렇게 또 지나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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